열심히 농사지었는데 빚만 느는 농민의 삶
열심히 농사지었는데 빚만 느는 농민의 삶
  • 최병근 기자
  • 승인 2020.10.02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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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값은 널뛰기 하는데 경영비는 매년 올라

땅값 올라서 빚 털어내자 또다시 빚더미 떠안아

각종 보조금사업으로 시설하우스 업자 배만 불려

정부 말만 믿었는데 빚만 늘었다. 농민 반발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결국 농민들에겐 빚더미만 남았다. 이번에도 잘 해보자고 다짐했던 일부 농민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고, 본인 명의로 통장과 신용카드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자식 명의로 카드와 통장을 만들어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이너스 3억, 5억. 통장에 찍혀가는 숫자를 보며 농민들은 체념했다. 농사를 잘 지어 오순도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았다. 80~90년대 농촌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이상을 품고 농촌현장에 투신한 운동권 학생들도 현실이란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현장 농민들은 본인 세대에 농가부채를 절대 갚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농가부채는 농민이 죽어야 끊어낼 수 있는 굴레인 셈이다.

농협 제주지역본부에 따르면 도내 23개 농‧축협을 통해 농민조합원들에게 지급된 대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농협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말 농민 조합원 대출 잔액기준은 2조8790억원(영농자금 1조2138억원, 영농외 자금 1조6652억원), 2017년 3조3959억원(1조3204억원, 2조755억원), 2018년 3조7594억원(1조4002억원, 2조3592억원), 2019년 4조0936억원(1조5244억원, 2조5692억원), 2020년 6월말 기준 4조1836억원(1조5716억원, 2조6120억원)으로 증가하고 있다. 농협 제주지역본부 관계자는 “농협을 통한 대출 외에도 지역 신협과 새마을금고 등을 통해 빌린 돈을 포함하면 농가부채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민이 죽어야 끊어낼 수 있는 농가부채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농사를 짓는 A씨는 빚만 3억이다. 밭 11만5702㎡(3만5000평)에 콩, 보리, 조, 메밀 등 밭작물을 재배하고 있지만 다섯 식구가 생활을 영위하기엔 소득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조수익 1억원을 넘겨야 순수익 4500만원 정도가 남는데 지난해 들어간 돈을 계산해보니 6000만원이었다”며 “결국 농지를 담보로 빚을 내야 가계경제를 꾸려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농산물 가격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니 겸업을 해서라도 소득을 내지 않으면 농촌 사회에선 생활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탓도 크지만 농업경영에 서툰 농민들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제주시에서 농사를 짓는 문모씨는 “과거에는 제주지역에서 시설하우스를 지어 감귤 농사를 지으면 가격을 보장 받아 소득이 올랐지만 각종 FTA 보조사업으로 시설하우스가 우후죽순 늘어나다 보니 감귤 공급량이 많아져 가격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이 시설 하우스 보조 사업을 충분한 고민 없이 수용하고, 정부가 농민들을 달래기 위해 무작정 보조사업을 늘리면서 농민에게 빚을 떠안겼다는 지적도 있다. 문씨는 “어떻게 보면 농가부채는 정부와 농민들의 무지가 낳은 산물”이라며 “하우스를 제대로 지으려면 1억은 들어간다. 동네 구멍가게도 이 정도 금액은 들어가는데 보조금을 준다고 하니 덥석 보조금을 받아 시설하우스만 짓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농민들을 위한 보조사업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없고 시설업자들 배만 불리는 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씨는 특히 “농촌에서도 4인 가족 기준 5000만원은 순수익을 벌어야 먹고 산다. 그런데 그렇게 버는 농민은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빚내서 생활하다 빚을 갚지 못하면 땅을 팔아 부채를 상환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며 “농사지을 품목은 한정적인데 빚만 늘어가는 게 농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농민 무지의 산물 농가부채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감귤, 마늘, 각종 채소 9만9173㎡(3만평) 규모의 농사를 짓는 김모씨는 빚만 5억원이다. 지난해 그가 농업경영비에 쓴 돈은 1억원이 넘는다. 마늘농사를 짓는데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농업경영비를 제외하고 4인 가족 생활비로 김씨는 5000만원을 사용했다. 그러나 지난해 그는 농사를 지어 5000만원 손해를 봤다.

그는 “지난해 제주산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 도내 거의 모든 농민들이 울상이었다. 나라고 거기서 비껴갈 순 없었다”며 “20~30년 전만해도 농사를 1만평 지으면 네 식구 먹고 살고 땅도 조금씩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5만평을 지어야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농산물 가격이 좋아도 이제는 농사를 지어서 빚을 갚을 수 없는 구조다. 국내산 농산물 가격이 좋으면 정부가 수입산을 시중에 풀어 가격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며 “결국 농민들의 목숨과도 같은 농지를 팔아야 빚을 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목숨 같은 땅 팔아야 빚 해결 가능”

서귀포시에서 노지감귤 농사를 짓는 고모씨는 4년 전 땅 9917㎡(3000평) 가운데 500평을 팔아 빚 1억5000만원을 털어냈다. 하지만 올해를 끝으로 내년엔 또 다시 농가부채 수렁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고씨는 “지난해 타이벡, 각종 임대료, 농약, 비료, 인건비 등 농업경영비에만 1500만원을 사용했다. 그런데 손에 남은 건 500만원에 정도 밖에 안된다”며 “문제는 올해다. 점점 0원을 향해 달려가는 통장 잔고와 큰 아이 대학 등록금, 각종 생활비 등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하다. 이러다 4년 만에 또 다시 농가부채 수렁에 빠질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배추, 브로콜리, 월동무, 더덕 농사를 짓는 고모씨는 16만5289㎡(5만평)에 농사를 짓는다. 본인 땅은 1500평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임대한 농지다. 고씨는 3년간 제주산 월동무 가격 하락에 빚만 1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었다. 지난해 그는 6만평 농사를 짓는데 농업경영비만 3억원을 썼다. 그는 “농가부채 전액 상환은 꿈만 같은 일이다. 내가 죽기 전엔 빚 5억원을 다 갚지 못할 것 같다”며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가는 이상한 나라에 사는데 농산물 가격은 오락가락이다. 매년 농산물 품목을 고를 때 마다 도박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제주시 관내에서 양배추, 콜라비, 브로콜리 등을 재배하는 B씨는 신용불량자다. IMF이후 친구에게 ‘연대보증’을 섰다가 잘못됐다. 농사를 지어서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순진한 착각이었다. 벌써 20년이 다됐는데 신용불량자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게 농사를 지으면서 점점 불어나 갚지 못하는 빚 2억원이 늘 발목을 잡고 가슴을 누른다. 신용불량자인 그는 아들 명의의 카드를 사용한다. B씨는 “지난해 기준으로 빚만 2억원이 넘는다. 작년에 농사에 사용한 돈만 1억원인데 농산물 값이 바닥을 쳐서 또 빚을 졌다”며 “원금은커녕 이자만 겨우 갚아 나가며 빚을 유지하거나 늘려가고 있다. 이 빚을 언제 갚을지 모르지만 농사지어선 부채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정적 생활 위해 농가소득 보전해야”

농민들은 정부의 각종 보조금 사업이 농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업자들 배만 불렸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농민들은 현재와 같은 보조금 지급 방식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빚이 더 늘어나지 않게 하려면 농민들이 농촌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농가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와 같은 보조금 지급 방식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농민들에게 ‘직접’ 돌아갈 수 있도록 보조금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이미 현재와 같은 보조금 지급 방식은 업자만 배불리는 꼴이라는 걸 증명했다. 그러면 농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방법을 바꿔야 한다”며 “차라리 막대한 농업 보조금을 농민에게 직접 지급하면 농가소득도 일정정도 보전될 수 있다. 차라리 이 방법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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