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작은 행정행위 하나가 세상을 움직여요"
"공무원의 작은 행정행위 하나가 세상을 움직여요"
  • 표성준 기자
  • 승인 2021.01.17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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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오정훈 관리관의 41년 공직 노하우
고 3때 9급 공무원 입문 후 1급 관리관 퇴임
외국인관광객·세계자연유산·대중교통체계 등
제주 이슈 발생할 때마다 중심에서 진두지휘
왼쪽에서부터 조동근 전 해양수산국장, 오정훈 제주도의회 전 사무처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현대성 전 기획조정실장이 지난 연말 명예퇴직하면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왼쪽에서부터 조동근 전 해양수산국장, 오정훈 제주도의회 전 사무처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현대성 전 기획조정실장이 지난 연말 명예퇴직하면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오정훈 제주도의회 전 사무처장이 2020년 12월 31일자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명예퇴직했다. 1980년 9급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20일 모자란 41년의 세월을 공직에 복무한 그에게 정부는 지방관리관직을 수여했다. 관리관은 선출직과 정무직을 제외하면 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1급 직위다. 일 잘하는 공무원 중에서도 손꼽히던 그를 만나 공직생활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41년 공직생활 노하우 공개
제주특별자치도는 12월 31일 오후 '하반기 공직자 47명 명예로운 퇴임'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퇴직자 프로필은 오정훈 전 처장의 공적을 이렇게 소개했다. "도민행복을 위한 의정활동 지원 등 도정 정책 공감대 형성을 위한 도정정책 실행력 제고에 필요한 의회와의 협력 기반을 마련 등 의회과 도정의 협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함." 사실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원문을 실었다. 맞춤법 오류와 비문은 무성의의 다른 표현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번에는 코로나19 때문에 퇴임식이 진행되지 않아 오 전 처장이 명예퇴직과 함께 관리관 특별임용장을 받은 사실도 조용히 묻혔다. 퇴임 후 휴식 중인 오 전 처장은 제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행정의 오류와 무성의가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일깨웠다. 그리고 행정의 실책을 줄이기 위해선 어떡해야 하는지 41년간 쌓은 나름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그동안 언론 등에는 공개하지 않았던 월드컵경기장과 세계자연유산, 제주형 대중교통체계 개편 등에 관한 뒷이야기도 들려줬다.

대기업 연수 후 사고 대전환
"서귀포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학교 친구가 졸업하면 면서기라도 해보겠다면서 같이 공무원 시험을 보자더군요. 얼떨결에 따라가서 시험을 봤는데, 친구는 떨어지고 나는 합격했지요." 공무원시험을 치른 직후부터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대학을 포기한 그는 고교 졸업을 10일 앞둔 1980년 2월 10일 남제주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서귀포읍이 서귀포시로 승격하면서 새로운 시청이 탄생했지만 군청에 남았다.

  안덕면사무소 6개월 수습기간을 포함해 약 17년간 사정(감사), 새마을, 재무 업무를 수행한 남군에서의 공직 생활은 비교적 순탄했다. 그러다 감사계장(6급)으로 근무할 때 1년간 진행되는 특수교육 대상에 선발됐다. 신구범 당시 도지사가 각 분야에서 5%의 프로 공무원을 육성하겠다며 5급 5명과 6급 25명을 선발해 1년간 모든 업무를 배제하고 오로지 특수교육을 진행하기 위한 취지였다. 1년간 첫 3개월은 인재개발원에서 전산(컴퓨터)과 외국어를 집중 공부하고, 이후 능률협회 등 국내 교육기관과 대기업 연수, 대학 교육원 강의를 이수했다. 그는 이때 공직생활의 전환기를 맞게 됐다고 소개했다.

  "석달간 현대 직원들과 함께 현대그룹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그들은 우리와 달리 일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서비스, 현대증권, 금강개발, 현대산업개발, 현대백화점 등 계열사를 각 2주씩 순회하는 동안 해산물 판매도 해보고, 국내 경제에 대한 맨투맨 강의도 받아봤어요. 그때 마인드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우리의 작은 행정 행위가 국민의 삶과 직결되고 세상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에요. 소극적 행정에서 적극적 행정으로 전환해야겠다는 사고의 대전환이 일어났죠."

 

지역에 자원봉사 문화 정착
1997년 교육 복귀 후에는 당시 강태훈 군수의 재가로 인사교류를 통해 서귀포시청으로 옮겼다. 처음 맡은 일은 총무과 사회진흥 업무였다. 마침 2002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한창 경기장을 지을 때였고, 월드컵 성공 개최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월드컵 손님 맞이를 위해 일대 혁신이 필요할 때, '1단체 1자랑 사업' 정책을 추진했다. "월드컵경기장에 서귀포시지역의 각 단체 회원 2000여명이 모여 출정식을 진행한 후부터 지역에 월드컵 붐이 일었어요.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해서 서귀포 이벤트 자원봉사단도 만들었지요." 자원봉사 문화를 확산시켜 지금의 서귀포시자원봉사센터의 모태가 된 봉사단이었다.

  2002년 사무관 임명장을 받은 그에게 주어진 과제도 월드컵 관련 업무였다. 축제가 끝난 후 월드컵경기장의 사후 관리 문제가 불거져 '돈먹는 하마',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언론 비판이 이어질 때였다. 당시 강상주 시장은 송산동장이던 그를 서귀포체육시설사업단 기획팀장으로 임명하면서 두 가지 임무를 부여했다. 첫번째는 월드컵경기장을 흑자로 전환시키라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월드컵 개최지 중에서 유일하게 프로축구단이 없으니 유치하라는 것이었다. 앞서 사무관 5명이 거쳐간 자리였지만,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월드컵경기장에 사무실을 마련해 7급 직원(현 강경택 서귀포시 체육진흥과장)과 함께 단 둘이 근무를 시작했어요. 일주일 동안은 지하 3층에서부터 스카이라운지까지 샅샅이 살펴보고, 이후 출입기자들하고도 많은 대화를 해가면서 경기장 활성화 방안 계획을 수립했지요. 경기장을 동서남북 4개 구역으로 나눠 남쪽은 워터파크와 사우나, 북쪽은 영화 개봉관, 동쪽은 제주 삶의 근대문화 관련 시설을 유치하자는 내용이었죠."

월드컵경기장 흑자 전환
경기장 서쪽엔 3D·4D영상체험시설이 이미 들어서 있었다. 계획이 발표되자 논란이 분분했다. 생방송 토론회까지 진행될 정도였다. 계획이 실현되자 경기장이 위치한 서귀포시 신시가지뿐만 아니라 서귀포시가 달라졌다. 영화관 하나 없는 서귀포시 지역에 7개 극장을 갖춘 개봉관이 들어서고, 조성된 지 20년이 넘도록 대중목욕탕조차 찾아볼 수 없던 서귀포 신시가지에 대규모 사우나시설이 생겼다. 제주도에 전무한 실내 물놀이시설(워터파크)도 개장했다.

  "수익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임대료를 받기까지 불과 1년 사이에 진행된 일이었어요. 그걸로 감가상각비는 둘째 치고 경기장에서 발생하는 인건비는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딱 8000만원이 부족했어요." 그때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진행하는 한중일 리그전(제3회 A3 챔피언스컵)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해 2005년 2월 한국에서 개최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서귀포시가 접근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겨울에도 잔디가 푸르다는 장점이 있잖아요. 결국 유치에 성공하고 서귀포시뿐만 아니라 제주도에서도 참여해줘 입장권만 4억원 이상 판매해 1억원 이상 수익을 낼 수 있었죠." '돈먹는 하마'라던 월드컵경기장이 흑자로 전환되자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흑자 전환보단 신시가지 지역 경제 회생 역할을 했던 게 큰 보람이었죠."

제주유나이티드FC 유치
내친 김에 프로축구단을 유치하라는 재촉도 이어졌다. 당시 서귀포시청 각 부서 사무실에선 슬로건을 적은 현수막을 내거는 게 유행이었다. 오 전 처장은 프로축구단을 유치하는 데 스포츠관리사업단의 슬로건이 큰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슬로건은 '스포츠는 서귀포시의 제2의 생명산업이다'였다. "부천SK가 5억원의 용역비를 투입하고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센터에 의뢰해 새 연고지를 찾던 중이었어요. 센터 관계자가 우리 사무실을 찾았다가 슬로건을 보고 감을 잡았던 것이죠." 그렇게 2006년 2월 제주유나이티드FC가 탄생했다.

  2006년은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해다. 제주도 세계유산담당으로 발령받은 그에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도전을 위한 업무가 주어졌다. 일본 후지산이 이미 도전 중이었고, 한국은 설악산이 신청했다가 실패(철회)한 경험이 있었다. 더구나 유네스코의 현지 실사를 받기까지 남은 시간은 1년뿐이었다. "사실 1년 만에 된 나라는 없었어요.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추진위원들과 기독교인인 직원들까지 함께 한라산 남벽에 올라 한라산신에 절을 했지요." 결국 2007년 6월 제주도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오 전 처장은 서귀포시청에서 제주도청으로 옮기고 4급(서기관)과 3급(부이사관)으로 승진한 이후에도 지역의 최대 현안 업무를 수행했다. 관광정책과장 때는 외국인 관광객 200만명 유치에 성공하고, 교통항공국장으로 있을 땐 30년 만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진두지휘했다. 제주도가 세계로 시각을 돌리고 국제적으로 전환점을 맞을 때 그 중심에 있었던 셈이다.

 

평범한 승진 비결 공개
가장 말단인 9급에서 시작해 1급에 오른 그는 후배 공무원들을 위해 특별할 것 없는 승진 비결을 공개했다. "어느 자리에 가고 싶다고 윗사람들에게 부탁하지 마세요. 지금 맡은 일을 성실히 적극적으로 하고 있으면, 높은 사람들이 자기 편하려고 서로 다퉈가면서 선발해 갑니다." 공무원이 지켜야 할 철칙도 이렇게 언급했다. "공무원은 '성격적 영혼'을 떼어놓고 살아야 합니다. 공무원이 감정에 치우쳐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순간 반드시 실책을 부르게 됩니다."

  오 전 처장은 어떤 정책이든 혼자서 진행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변의 의견을 충분히 들으라고도 조언했다. 의견을 듣는 그 자체가 우군을 만들어내고, 해결책도 찾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퇴직 후 가장 먼저 할 일로 산남지역을 구석구석 걸어다니겠다고도 했다. "공직 경험을 살려 지역의 미래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는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건강을 챙기면서 지역경제도 파악할 수 있고요."

  금강경을 즐겨 읽는다는 그는 공직생활 중 세상에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걸 철칙이라고도, 순리라고도 설명했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가는 동안 짱돌을 만나면 옆으로 피해가고, 움푹 패인 곳을 만나면 다 채운 뒤에 다시 흐르고, 개똥이 있으면 피하지 않고 감싸 안지요. 그런데 행정은 어떤 사안이나 물질에 대해서 구분하는 것만 알려주지 그 본질은 알려주지 않아요. 사무실 업무도 중요하지만 변하지 않는 이 법칙을 알아야 진정으로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행정을 할 수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표성준기자 ahsur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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