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말똥가리가 닭 대신 물닭을 택한 까닭
큰말똥가리가 닭 대신 물닭을 택한 까닭
  • 제주경제신문
  • 승인 2021.02.0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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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병의 생태칼럼]
큰말똥가리가 종달리 습지에서 물닭을 낚아채고 오후를 즐기고 있다. [사진=조영균]
큰말똥가리가 종달리 습지에서 물닭을 낚아채고 오후를 즐기고 있다. [사진=조영균]

맹금류 중에 매보다 크고 솔개보다 작은 말똥가리가 있다. 제주 사람들에겐 '똥소로기'로 익숙하다. 소로기(솔개)와 함께 집 마당에서 키우는 병아리를 낚아채는 기술은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말똥가리, 큰말똥가리, 털발말똥가리 등 3종 모두 겨울철새이며, 제주에서도 확인된다. 말똥가리가 가장 흔하며, 큰말똥가리와 털발말똥가리는 아주 드물게 도래한다. 언뜻 보면, 서로 비슷한 외형이어서, 전문가라도 야외에서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보통 말똥가리는 인가 주변보다는 농경지나 오름 주변 상공에서 빙빙 돌면서 먹잇감을 노린다. 병아리처럼 통통한 새를 노리는 것이 유리하다. 멧비둘기나 꿩은 좋은 먹잇감 대상이다. 말똥가리보다는 약간 크고 깃털색이 밝은 편인 큰말똥가리가 한 장소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다는 것은 분명 그 주변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는 단서가 된다.

  농경지 돌담, 건물과 곰솔 꼭대기를 번갈아 앉으면서 경계하기를 반복하더니, 드디어 먹잇감의 정체를 포착하였다. 물닭이었다. 닭같이 생겨서 이름이 지어졌다. 닭 대신에 물닭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습지에서 월동하는 물닭은 몸 전체가 까만색이며, 잠수 능력을 지니고 있다. 물가에서 헤엄치다가 물 위에서 파래를 먹기도 하고 잠수해서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한다. 간혹 매도 물닭을 노린다. 매나 큰말똥가리가 수면 가까이 접근하면 물닭은 잽싸게 잠수하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야생의 먹이사슬은 야비할 정도로 처절하다. 포식자와 피식자 간에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이지만, 피식자의 입장에선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포식자는 성공해야겠지만, 피식자로는 저항하는 법을 터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큰말똥가리는 말똥가리보다는 약간 크고 깃털색이 밝은 편이며, 한 장소에 오래도록 머무는 습성이 강하다. [사진=조영균]
큰말똥가리는 말똥가리보다는 약간 크고 깃털색이 밝은 편이며, 한 장소에 오래도록 머무는 습성이 강하다. [사진=조영균]

  큰말똥가리가 물닭을 얻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점검해야 할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우선, 그 날의 날씨를 비롯하여 조망위치에서 습지까지의 거리, 먹잇감의 무리와 생활패턴 그리고 올레꾼의 동선과 농부들의 생활 등을 잘 파악해야 한다. 습지에는 물닭뿐만 아니라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홍머리오리, 중대백로, 왜가리 등의 물새가 함께 무리를 지어 월동하지만, 큰말똥가리가 탐내는 새는 물닭이다. 개체수가 많고, 오래도록 잠수하지 않고, 체중이 적당하고, 간혹 뭍으로 나온다.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식자의 체중이 너무 크면, 운반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오리들도 공격 대상이지만, 인근에 널려 있는 깃털들을 봐서는 다수의 물닭이 희생되었다. 사실 사람은 큰말똥가리에게는 큰 적이 되지 않았다. 그걸 아는지 큰말똥가리는 종달리와 하도리 습지를 오고가며 물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식자인 큰말똥가리는 먹이공격 성공률을 높여야 만이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반면, 물닭은 피신과 대비에 능해야 한다. 잠시 뭍으로 나왔다가, 순식간에 낚인다. 사실 물수리나 매가 나타나면, 습지에 있던 오리류와 물닭은 재빨리 인지하여 피신 비행한다. 이때 동작이 느리거나 낙오한 개체는 희생될 확률이 높다. 다른 무리들과 일사불란하게 동시에 움직여야 목숨을 건질 수가 있는 것이다.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월동지에서 만난 흰뺨검둥오리와 물닭이 서로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습지는 새들뿐만 아니라 여러 생명체에게 생물학적, 생태학적으로 좋은 서식지인 동시에 사람에게도 생업적, 경관적 공간으로 중요한 곳이다. 어디 습지뿐이겠는가. 어느 곳이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큰 틀에선 생태적 균형이 유지되는 곳이 자연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다. 강한 자와 약한 자, 가진 자와 없는 자 그리고 평범한 자와 대범한 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차별과 선택적 불행을 정당화해서는 곤란하다. 야생에서처럼 상대를 무너뜨리고 죽이지 않아도 다 함께 행복해야 된다. 큰말똥가리가 마당의 닭 대신에 습지의 물닭을 선택한 까닭을 헤아리면서, 포식자와 피식자 간의 불편한 인간관계를 곱씹어본다.

김완병 동물연구원/이학박사 kwb8705@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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