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희귀한 계약서' 본 적 있나요?
이렇게 '희귀한 계약서' 본 적 있나요?
  • 표성준 기자
  • 승인 2021.03.04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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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금 2원·해약금 20억에 100억짜리 매매
제주문화예술재단, 재밋섬 건물 매입 추진
감사위 "투명성·공정성 미확보" 지적 불구
타당성검토위 운영 결과 "중대 하자 없어"
재밋섬
재밋섬

제주문화예술재단이 계약금 2원·중도 해약금 20억원에 100억원짜리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해 논란을 일으킨 재밋섬 건물을 당초 계획대로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감사위원회 감사 결과 계약 체결내용과 감정평가의 부적절성이 드러나고, 제주도의회가 관련 시설비 출연 동의안을 부결했는데도 이 같은 방침을 정한 것이다. 더구나 재단은 사업에 호의적인 인사들로 타당성검토위원회를 구성해 감사위원회 감사 결과와 검찰 조사 결과를 모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사업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경매서 24억 유찰 후 100억 낙찰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지난 2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제주아트플랫폼 타당성검토위원회가 제주아트플랫폼 조성사업에 대해 조건부 추진할 것을 재단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재단은 검토위가 제주아트플랫폼 조성사업의 타당성 분야를 검토한 결과 원도심 활성화와 도내 문화예술인에 대한 공간적·정책적 지원이라는 정책 목적과 기대 효과 측면에서 다수 위원들이 공감하고 타당성이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재단은 지난 2018년 10월 제주도의회에 가칭 한짓골 제주아트플랫폼 조성을 위한 시설비 출연 동의안을 제출했다. 당시 재단은 재밋섬(옛 아카데미극장) 건물을 매입해 문화예술인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과 공공공연연습장, 독립영화관 등 복합 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건물매입·리모델링 실시설계비 112억원과 리모델링비 60억원(도비 45억·국비 15억)을 포함해 총 172억원이 필요하며, 리모델링비 중 도비 45억원을 재단의 육성기금에서 출연하겠다고 동의를 구했다.

  이 과정에 총매매대금 100억원이지만 계약금은 2원(토지 1원·건물 1원)이고 계약 해지하는 경우의 손해배상금은 20억원인 희귀한 계약서의 존재가 드러나 논란이 시작됐다. 더구나 재밋섬 건물은 지난 2009년 12월 법원 1차 경매 때 최저입찰가격이 144억2000만원이었지만 이후 계속 유찰돼 2011년 8월 5차 경매 때는 최저입찰가격이 34억6000만원까지 떨어졌는데도 다시 유찰된 전력이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구도심 한복판에 있는 재밋섬 건물의 부동산 가치가 얼마나 하락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재밋섬 건물은 2011년 9월 최저입찰가격 24억2000만원에 진행된 6차 경매에서 100억8000만원에 낙찰되는 반전이 일어난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당시 낙찰받은 이모씨는 잔금을 납부한 직후인 같은 해 11월 한올글로텍에 106억원에 건물을 매각했다. 이후 건물은 2014년 4월 블루씨티홀딩스로 소유권이 이전됐으며, 2016년 4월에는 주식회사 재밋섬파크로 다시 소유권이 넘어갔다.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위원회는 2018년 11월 행정사무감사에서 재밋섬 건물의 소유권 문제를 제기했다. 도의회 확인 결과 재밋섬파크는 현대캐피탈로부터 50억원을 대출받은 상태에서 신한은행과 제주은행에 61억3000만원을 대출받아 신한은행과 부동산 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위탁자인 재밋섬파크가 채무를 갚지 못한 지금 건물의 소유권은 신탁자인 신한은행에 있기 때문에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위탁자인 재밋섬파크와 체결한 부동산 매매계약은 무효라는 것이다.

부적정 불구 위원들은 찬성 일색
논란이 제기되자 제주도 감사위원회는 재단의 재밋섬 부동산 매입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2019년 1월 그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 결과 재단은 정기이사회는 물론 도지사에게도 사업 내용(기본재산운용계획)을 보고하지 않았으며, 외부전문가를 배제한 채 재단 및 도청 관계자만으로 사업 타당성 검토를 위한 기본재산관리위원회를 구성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매대금의 10% 정도인 일반적 거래관행을 무시하고 100억 짜리 매매계약을 하면서 계약금 2원·중도 해약금 20억원의 부동산 계약을 체결한 내용의 부적정성 문제도 지적됐다. 감사위원회는 국토교통부에 의뢰한 재밋섬 부동산 감정평가 타당성 조사 결과를 근거로 재단이 제시한 감정평가 내용은 인근지역의 쇠퇴상황 등 감가요인을 고려하지 않아 적정 시장가치를 반영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감정평가액에 기초한 매매가격도 부적정하다고 지적했다.

  감사위원회는 당시 사업을 주도한 박경훈 전 재단 이사장이 퇴직해 신분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됐다며 기관경고로 대체했다. 또한 제주아트플랫폼 조성사업을 부적정하게 추진한 재단 직원 3명에 대해 징계(1명) 및 경고(2명) 처분을 요구했다. 재단에 대한 지도·감독 책임을 물어 제주도 관계 공무원 2명에 대해서도 훈계 조치를 요구했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재단은  2019년 11월 제주아트플랫폼 타당성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지난해 연말까지 총 9회에 걸쳐 회의한 결과 '조건부 추진'이라는 최종 결론을 도출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재단은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에 따라 분야별 대표성이 있는 전문가 15명으로 검토위를 구성해 합리적이 해결방안을 강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토위에 참여한 한 위원은 처음부터 사업에 호의적인 인사들로 대부분의 위원을 선정했기 때문에 회의 분위기는 찬성 일색이었으며, 반대 의견은 극히 소수였다고 전했다.

  실제 재단이 도의회에 제출한 '타당성검토위원회 결과보고'에 따르면 위원 15명 중 11명이 타당성을 인정했으며,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위원은 2명뿐이었다. 나머지 2명은 회의에 불참하고, 의견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검토위 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1차 회의 때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고 들러리로 참여할 순 없다며 검토위에서 탈퇴한 일도 있었다.

  재단에 따르면 검토위는 매매계약서의 내용 중 일반적인 매매계약의 관행과 일부 다른 부분이 있으나 계약서 조항 자체만으로 사업을 무효로 돌리거나 취소할 정도의 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감정평가금액의 시장가치 미반영 문제에 대해선 사업자체를 취소하거나 무효로 돌릴 만큼의 하자가 발견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경매에서 유찰되는 과정에 최저입찰가격이 20억원대까지 하락한 전력이 있는데도 전체적으로 건물 매입가격이 감정평가에 기초한 것이어서 시장 가격에 비춰 현저히 불합리 요소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감사 결과 수용해놓고 "부적정 증거 없어"
2018년 7월 당시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위원장이던 이경용 의원(국민의힘, 서귀포시 서홍·대륜동)은 제362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긴급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문화관광위원회 전체 의원의 뜻이라며 재밋섬 건물 매입 2차 중도금 지급의 중단을 요청했다. 재단은 총 매매대금 100억원 중 1차 중도금 10억원을 같은 해 6월 28일 이미 지급한 상황이었다. 2차 중도금 60억원 지급 예정일은 긴급 의사진행발언이 나온 바로 다음날인 7월 20일이었다. 원희룡 지사가 이 의원의 요청을 받아들여 2차 중도금을 포함해 잔금 90억원은 지금까지 미지급된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 정의당 제주도당이 지난 2019년 2월 사업추진 책임자인 재단 전 이사장과 재밋섬파크 대표이사, 제주도 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재단은 검찰이 이 고발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며 사업 추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단은 "검찰은 재단의 부동산 매입과정에서 도지사 사전 승인, 타당성 검토, 주민설명회 등 정관 및 관련 규정에 따른 절차가 모두 지켜졌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또한 부동산 매입 액수가 특별히 부적정하거나, 소유권 이전 절차가 부적정하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감사위원회는 검찰 조사 결과 발표 직후인 2019년 10월 보도자료를 내고 제주지검 고위관계자를 통해 확인했다며 검찰의 불기소 결정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감사위는 "검찰 불기소 결정문상의 내용은 배임·사기 등 혐의와 관련된 형사상의 책임을 판단하는 데 관련된 사항일 뿐"이라며 "재밋섬 매입 과정에 따른 행정적인 절차 전반에 걸쳐 재단이 절차를 지켜 문제가 없다거나, 부적정하다고 볼만한 증가가 없다고 단정한 것은 아니라고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감사위는 이보다 앞서 사건을 조사한 제주동부경찰서도 재밋섬 매입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하자를 발견했지만 재산상의 이득을 취해 손해를 끼쳐야 성립되는 형법상의 배임죄 등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발견된 하자는 행정 내부의 처분 요구나 처벌로도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감사처분요구(행정행위)의 구속력에 따라 재단이 행한 행정절차상의 하자는 여전히 효력을 갖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더구나 재단 역시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에 대해 이의(재심의)를 제기하지 않고 수용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언론·시민단체 이례적 난타전
재단이 제주아트플랫폼 타당성검토위원회 운영 결과 '조건부 추진'이라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2월 4일)하자 인터넷매체인 미디어제주는 2월 9일 <제주문예재단 아트플랫폼 재추진… "결정 과정, 도민은 알 수 없어"> 제하의 기사를 통해 사업 추진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했다. 반면 또 다른 인터넷매체 제주의소리는 같은 날 <제주아트플랫폼 3년 만에 재가동… "발목 잡기 이제 그만"> 제하의 기사에서 재단의 입장을 두둔하고, 재밋섬 건물 매입에 반대 입장을 밝혀온 도의회와 시민단체, 정당, 언론을 싸잡아 비판했다.

  제주의소리가 그동안 재단 사업에 발목을 잡은 것을 반성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한 제주경실련도 2월 9일 성명을 통해 "정책결정권자들의 정치자금 등 검은 뒷거래가 의심된다"며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제주의소리는 이에 대해서도 2월 10일 <아트플랫폼 재추진에 근거 없는 "정치자금", "뒷거래">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제주경실련이 설득력 부족한 의혹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2월 23일에는 양시경 제주경실련 공익지원센터장이 언론 기고를 통해 '제주의소리'라고 명시하진 않았지만 "최근 일부 언론보도의 논조대로 라면 정부기관이나 제주도 행정에서 하는 모든 일은 공정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수긍해야 한다는 말이냐"고 반박했다. 미디어제주는 양시경 센터장 명의의 성명서를 인용해 같은 날 <"제주아트플랫폼 사업 본질 왜곡한 언론, 공개 답변하라"> 제하의 기사에서 <"언론이 진실 왜곡하면 안 돼"... '제주의소리' 기사 겨냥>이라는 부제를 써서 제주의소리를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제주사회에서 특정 사업을 놓고 언론과 언론, 언론과 시민단체가 반대 입장을 제시하거나 토론한 사례는 많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서로를 비판하고 대립하는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재밋섬 건물 매입과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이상 이렇게까지 과민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도의회 보고 후 조성 계획 수립키로
재단은 분야별 대표성이 있는 전문가가 참여한 타당성검토위의 최종 권고에 따라 후속조치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2월 26일 제392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문화관광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제주아트플랫폼 타당성 검토 결과 등 향후 계획을 보고한 뒤 도민과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 방안을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소유권 이전 문제를 협의해 제주아트플랫폼 리모델링 전까지 임시 운영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재단은 이어 제주도와 협의해 리모델링 등 공간 조성을 위한 국비 등 예산 마련 방안을 추진해 공간 조성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재단은 부동산 매입에 100억원, 임시운영을 위해 13억원(임시운영, 설계, 부대비용, 세금 등)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 공간구조를 최대한 유지·활용해 공간조성비용을 최소화하고, 국비 지원사업에 적극 참여해 도비 예산을 최소화하겠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박진우 제주문화예술재단 미래문화팀장은 "현금에서 부동산으로 형태만 바뀌는 것이지 기금 자체는 존속되는 것"이라며 "재단 입장에선 '문화예술계와 도민들을 위해 기금을 활용해서라도 공공공연연습장을 비롯해 열악한 환경이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사업이기 때문에 예술계나 주민들이 혜택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표성준기자 psj@jeju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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