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새는 죄를 짓지 않았다
동박새는 죄를 짓지 않았다
  • 제주경제신문
  • 승인 2021.04.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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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병의 생태칼럼]
제주의 대표적인 텃새 동박새는 특히 동백꽃의 꿀을 좋아한다.
제주의 대표적인 텃새 동박새는 특히 동백꽃의 꿀을 좋아한다.

요즘 감귤나무 간벌이 한참이다. 일에 열중한 나머지, 동박새의 둥지가 있는 나뭇가지를 잘라 버렸다. 순간 어미 동박새는 가지 사이로 빠져나갔다.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도 둥지를 지은 동박새가 더 당황한다. 멧비둘기나 동박새는 천적의 눈을 피해 둥지 위치를 선택하며, 동박새의 둥지는 야구공을 반으로 자른 듯 모양으로, 감귤나무 가지에 붙어있다. 동박새도 둥지도 워낙 작고, 감귤나무 잎에 가려져 앞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 반면, 몸집이 비교적 큰 멧비둘기는 사람 눈에 띄는 경우가 많아 의외로 보호받는다.

  새들의 보금자리는 알과 새끼를 비바람이나 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리고 어미새의 헌신적인 노력이 보장되어야, 새끼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동박새는 숨어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서인지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독으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제주의 새 중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지만, 가족 단위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먹이를 따라 늘 바삐 움직이지만 한 장소에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돔박생이(동박새)는 그토록 많은 곳을 방문했지만 수많은 정보를 다 기억할 정도로 영특하다.

  동박새의 몸 색깔이 감귤나무와 동백나무의 잎과 워낙 비슷해서 위장 효과가 크다. 동박새의 눈은 테가 하얀 안경을 낀 것처럼 생겼다(영어 이름 White-eye). 연녹색의 몸 색깔과 안경을 끼고 있어선지, 나뭇가지에서 기어 다니는 곤충과 거미 그리고 열매, 꿀 등의 먹잇감을 잘 포착한다. 동박새의 부지런함은 동백과 감귤의 해충을 잡아주고, 열매를 맺게 한다. 동백꽃이 다 떨어질 즈음에는 벚꽃과 버찌를 찾는다.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고 해서, 동백꽃이나 벚꽃으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오해를 사지 않는다. 먹이를 감추거나 저장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 무엇이 얼마만큼 있는지를 잘 기억해둔다. 동박새는 꽃길에 내려앉지는 않고 하늘 꽃길을 날아다니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대신 한번 갔던 이동경로를 반복하는 습성이 있다.

동박새가 왕벚나무 꽃과 가지에서 먹잇감을 찾고 있다.
동박새가 왕벚나무 꽃과 가지에서 먹잇감을 찾고 있다.

  어느 겨울날, 평소와 다름없이 동백꽃 꿀이 있는 순이네 마당을 방문했다. 근데 이상했다. 직박구리도 안 보였다. 꽃에 앉았는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꿀을 빠는데 누군가 지켜보고 있어야 긴장감이 흐르고, 제법 꿀맛을 느끼게 된다. 몸을 숨기거나 다른 데로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순이네 집은 적막했다.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난 게 분명했다. 집에 있어도 소리를 낼 수 없었고, 집 밖 어두운 곳에서도 숨소리를 죽여야 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본 게 아니었고, 눈이 내려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아야 했다. 코로나 자가 격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역사는 있으나 기록이나 단서를 남길 수가 없었다. 동박새처럼 들키지 말고, 다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새들은 소리에 워낙 민감한 동물이어서 주변에서 들리는 진동에 빠르게 반응한다. 바람 소리, 사람 목소리와 발자국소리, 다른 동물의 소리 등을 감지하고, 체류 시간을 결정한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동박새는 잠들지 않는 남도의 비극을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런 죄가 없는 동박새가 동백꽃과 벚꽃을 찾아다니면서 말하지 못한 사연을 퍼뜨려 죄책감을 씻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기억이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코로나 방역대응처럼 가는 곳마다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4·3은 역사 앞에 당당하게 서있게 되었다. 이념에 따라 사람에 따라 명령에 따라 시국에 따라 못살겠다고 제주 땅을 떠날 순 없었던 지난 세월들. 부모와 형제자매를 잃고, 한 맺힌 옥살이와 연좌제로 한 평생을 울분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죄는 국가가 지었는데, 아무런 죄도 없이 희생당한 영령들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이제나 저제나 하며, 매년 잔인한 4월을 죄없는 동박새를 보며 보내야 했다. 백성은 있는데 백성을 위한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증거도 없으면서 죄인으로 살게 했다. 보호받아야 할 삼촌들이 감시를 받아야 했으며, 이웃을 의심하며 살아왔다. 정말 대한민국은 나쁜 나라였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 kwb8705@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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