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고 부지런하면, 자연스레 농작물이 알아요"
"도전하고 부지런하면, 자연스레 농작물이 알아요"
  • 최병근 기자
  • 승인 2019.10.09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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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농민회 제주도회 송용진 회장

스무살때부터 지금까지 45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부모로부터 밭을 물려받아 시작한 농사가 지금은 3500평(1만1570㎡)으로 늘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현재는 만감류 ‘박사’나 다름없다.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에서 농사를 짓는 송용진(65)씨 이야기다.

송씨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공부보다 부모님 일손을 도와드리는 건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잔심부름에서부터 쟁기로 고구마 밭을 갈고 나면 줄기를 거두는 일까지, 아버지가 할 수 없는 일을 도왔다. 

스물여섯. 결혼을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육남매 재산을 분배했는데, 송씨에게 주어진 몫은 1500평(4958㎡)이었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당시 대정읍에서는 보리와 고구마가 주 작목이었다. 보리농사를 시작했는데 전년도에 그의 이름으로 출하한 실적이 없어서 수확한 보리 200포대를 정부 수매로 팔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고향도 아닌 그가 마을 이장까지

그는 대정읍 보성리가 고향이 아니다. 원래 그는 인근 대정읍 신평리가 고향이다. 제주4.3때 선친께서 고향인 신평리를 등지고, 송씨 외가 동네인 보성리에 둥지를 틀었다. 그래서 그는 유년시절부터 “혼자 살아야 하니까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성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4H, 농촌지도자 활동과 같은 봉사활동을 가리지 않았다. 1984년 농업경영인 자금을 받아서 한국농업경영인 대정읍 초대 회장을 거치기도 했다. 

마흔넷에 보성리 이장을 했다. 이장을 마치고 바르게살기 대정읍 위원장, 대정농협 감사 및 이사, 한국새농민회제주도회 사무국장, 서귀포시회장을 거쳤다. 

그는 “이장을 할 때 태풍으로 무너진 98세 할머니 초가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주민들의 도움으로 다시 지어 줬다. 할머니는 돈 한푼 내지 않았다. 이장으로 활동할 때 새마을지도자회에서 어려운 가정 집 지어주기 사업을 진행했는데 그 사업에 참여해 집을 새롭게 지었다”며 “이장 당시 남제주군청에 출근하다시피 공무원들을 만나 마을의 각종 민원과 도로포장과 같은 숙원사업을 이뤄냈다. 4년간 이장으로 활동하면서 마을 복지회관도 신축했다. 대정읍 이장협의회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선구자의 정신으로…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2000년 초반 그린키위와 골드키위를 재배했다. 골드키위는 대정지역 토질 특성상 물 빠짐이 좋지 않아서 차츰 고사해버렸다. 그는 또 그린키위도 재배했지만 작업하기가 매우 힘들고 나무 한 그루가 고사하면 10미터의 공백이 생겨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판단해 감귤로 대체했다.

그는 “선구자는 원래 돈을 못번다(웃음)”며 “이장이 끝날 즈음 키위농사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이런저런 경험을 내가 먼저 시작해서 좋으면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근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웃음)”고 말했다.

송씨는 키위 농사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훌륭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주저하지 않고 다시 도전했다. 

그는 “2011년 FTA기금 지원을 받아 감귤하우스를 지어 처음에는 일반 조생감귤에 레드향을 접붙여서 시작했다. 아내와 단 둘이 하우스 감귤농사를 짓기 위해 레드향(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수확), 천혜향(2월), 카라향(4월) 품종을 3500평의 하우스에 재배했다”며 “적과, 가시제거, 수확까지 일년내내 농사를 짓고 있다. 만감류를 주작목으로 하다 보니 직장에 출근하는 기분으로 아침에 작업복을 입고 하우스로 출근하고, 놀아도 밭에서 논다”고 웃음 지었다.

지금의 그를 만든 건, 부지런함·연구정신...그리고 아내

소처럼 묵묵히 농사를 짓다보니 2002년 농협중앙회가 시상하는 새농민상도 받게 됐다. 현재 그는 한국새농민제주특별자치도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만감류를 연구하기 위해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로 견학을 여러 번 다녀왔다. 듣는 교육도 중요했지만, 직접 현장을 가서 보고 확인했다. 그리고 농장으로 돌아와 직접 적용시켜 봤다. 

그는 “남이 한다고 따라 하기만 했다가 관리를 잘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몇년 고생을 한다”며 “자기가 안 하는걸 하려면 경험자에게 이야기도 듣고, 현장을 봐야한다”고 노하우를 설명했다. 

그 결과 소위 ‘대박’을 쳤다. 레드향은 접을 붙이고 보통 2년 공백이 생기게 마련인데, 1년이 지나고 수확에 성공한 것이다.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첫해에 5000만원을 벌었다. 각종 경영비 등을 제외해도 4000만원 남짓 남았다”며 “다음해에는 9500만원을 벌었다. 가격도 좋아서 호재를 맞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감귤나무에 물주는 시간과 물 끄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메모장에 꼼꼼히 기록한다. 자칫 다른 일을 하다가 시간을 놓치면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그는 농사짓는 걸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감귤하우스에 다녀가면 몸이 풀린다고 했다. 그는 “ 농사꾼이 밭에 간만큼 나무가 알아서 자란다”며 “밭에서 나무를 둘러보다가 하다못해 잡초라도 뽑고, 감귤나무가 부러질 것 같으면 줄을 매달고, 그렇게 매일 밭을 돌아보면 나무도 농민의 심정을 알아주듯 무럭무럭 자란다”고 말했다. 

그의 삶에서 아내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반자다. 아내에게 늘 잘해주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표현도 잘 하지 못하는 천상 ‘제주남자’다. 그는 “아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나는 거의 나돌아 다니면서 사회활동 하다보니까…”라며 “아내한테 잘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늘 부족한 것 같다. 아내에게 매번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고품질 감귤, 농민이 원하는 가격 출하 가능”

그는 농민들도 조직화를 통해 원하는 가격으로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출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고품질 감귤을 생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시대에 맞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 내가 생산해서 맛없는 감귤을 누가 돈 주고 사겠나. 이건 양심의 문제”라고 단호한 입장을 보이며 “우리가 품질 좋은 감귤을 생산하면 우리가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농민들만 생각하면 앞으로 농업은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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