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판 살인의 추억’ 보육교사 살인 2차 공방 시작
‘제주판 살인의 추억’ 보육교사 살인 2차 공방 시작
  • 김진규 기자
  • 승인 2019.10.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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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판결에 검찰 “1심 판단 사실과 법리 오해” 항소
檢 증거물 재감정 결과 항소심 증거로 제출할 예정
항소심 재판부, 유무죄 입증 증거 판단 여부에 주목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가 30년만에 특정된 시기에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2009년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도 맞물리면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2009년 2월 발생한 보육교사 살인 사건은 제주의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 ‘장기간 해결하지 못한 강간 살인’이라는 점도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유사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모티브가 된 영화 ‘ 살인의 추억’을 빗대 ‘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이재권 수석부장판사)는 9월25일 강간 살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모(50)씨에 대한 첫 심리를 열었다. 

지난 7월11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풀려난 박씨는 9월 항소심 재판에서 회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법정에 들어섰다. 다소 긴장되는 듯 얼굴은 굳었지만, 별다른 표정은 없었다. 신원 확인 절차에 따른 질문에만 대답했을 뿐 재판 내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검찰이 “1심 재판부가 제출된 증거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사실과 법리를 오인한 것”이라며 항소했지만 불리한 처지에 놓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검찰은 박씨의 택시 안에서 검출한 피해자가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무스탕 털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재감정을 의뢰해 항소심 증거로 제출할 계획이다. 현재 재감정 결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향후 항소심 재판 일정도 미지수다. 결과가 나온 뒤 유무죄를 판단하겠다는 것인데 1심과 같은 결과라면 검찰이 1심 판결을 뒤집고 승소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만큼 증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의 죄명은 ‘강간 살인’이다. 강간 살인죄가 유죄가 인정될 경우 법률에 따라 법정 최고형인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지는 만큼, 보다 엄격하고 신중한 법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이유도 “피고인이 범행을 했다는 의심스런 정황은 있지만, 검찰이 제시한 ’미세섬유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데다 직접적인 증거도 아니어서 유죄를 입증하는데 불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0년 전 확보한 증거물에 대한 ‘적법성 공방’에서 검찰이 ‘판정 패’한 것이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능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이른바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에 발목이 잡혔다. ‘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도 독이 있다’는 이 이론은 위법하게 수집된 1차 증거는 물론 그 증거로 발견된 2차 증거까지 모두 증거 능력을 잃는다는 원칙이다.

10년 전 경찰은 박씨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할 당시 박씨가 다른 죄로 교도소에 구속된 상태였기 때문에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청바지 등 옷가지를 가져왔다.  

재판부는 박씨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현장에서 다른 수상한 증거물이 발견됐다고 해서 무조건 압수해서는 안된다. 이를 압수하려면 별도의 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아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압수된 증거물은 효력을 잃어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로 굳어진 압수수색의 대원칙이다. 유무죄를 판가름하는 열쇠였던 미세섬유 조각인 ‘실오라기’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이유다. 

이에 제주지검은 “법원은 청바지의 증거능력을 부정함과 아울러 미세섬유, 털, cctv영상의 증명력을 전부 부정하면서 증거불충분을 사유로 무죄 선고했으나, 검찰은 청바지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함과 아울러 미세섬유, 털, cctv영상 등 제출된 증거에 의하면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상 항소사유중 하나인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을 사유로 항소한다”고 밝혔다.

형사재판에 제출된 증거물 가운데 일부 위법하게 수집된 물품이 섞여 있었더라도 재판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이를 상고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를 기초로 해 획득한 2차적 증거의 경우에도, 절차에 따르지 않은 증거 수집과 2차적 증거 수집 사이 인과관계의 희석 또는 단절 여부를 중심으로 2차적 증거 수집과 관련된 모든 사정을 전체적,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외적인 경우에는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절차에 따르지 않은 1차적 증거 수집과 관련된 모든 사정들을 살피는 것은 물론, 1차적 증거를 기초로 한 2차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한 모든 사정들까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주로 인과관계 희석 또는 단절 여부를 중심으로 전체적·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법관의 영장 없이 증거를 수집하더라도, 범인을 특정해 체포됐던 피의자가 석방된 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다시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했거나 범행의 피해품을 수사기관에 임의 제출된 사정, 2차적 증거 수집이 체포된 상태에서 이뤄진 자백 등으로부터 독립된 제3자의 진술에 의해 이뤄진 사정 등은 통상적으로 2차 증거능력을 인정할 만한 정황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가 당일 박씨가 운행하는 택시에 탑승했다는 것을 밝힐 수 있는지 여부가핵심이다. 박씨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는데다, 혈흔이나 DNA 등 범행을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없는 상황에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사단계에서 나왔던 정황증거들로 입증해야 한다.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려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 심증이 직접 증거 뿐만 아니라 간접증거가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볼 때 증명력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같은 간접증거가 간접 사실로 인정되려면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아야 하고, 모든 간접사실이 모순돼선 안 되며, 논리와 경험적 과학법칙이 전제돼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범인이라는 심증을 갖더라도 증거로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 사건은 2009년 2월 1일 새벽 3시경 남자친구의 집을 나섰던 이씨가 실종(실종신고 2일) 일주일만인 2월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오름 인근 농업용 배수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이씨가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당일 박씨가 운행한 택시에 탑승했는지 여부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당일 새벽 범행현장 인근 애월농협유통센터 앞 CCTV와 애월읍 장전리 산빛마당펜션 앞 CCTV에 NF 소나타로 추정되는 흰색 차량의 옆 부분이 촬영됐고, 박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최종적으로 종료된 장소도 동일했다. 숨진 이씨의 휴대전화가 최종적으로 확인된 지점은 광령초등학교 기지국이다.

박씨의 집으로 귀가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로의 CCTV 모두 NF소타나가 시간대 별로 촬영됐으며 이중에는 박씨가 운행하는 택시 번호판도 찍힌 것도 있다. 2009년 당시 박씨와 동일한 택시는 도내에 14대 뿐이다.

검찰은 사건 당일 이씨가 집으로 귀가하기 위해 평소 이용했던 애월·하귀 콜택시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배차되지 않자 지나가던 박씨의 콜택시에 탑승한 것으로 추정했다. 박씨가 이씨의 집으로 향하던 도중 성폭행하려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건 일주일만에 발견된 시신에서는 출혈과 피복이 발견됐다. 방어흔까지 발견되면서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DNA는 검출되지 않았지만, 당시 박씨가 착용했던 진청색 남방과 청바지와 유사한 미세섬유가 발견됐다.

박씨가 운행하던 택시 운전석과 조수석, 뒷자리에서 이씨가 착용했던 상의 니트, 무스탕, 누군가에 의해 버려졌다가 회수된 이씨의 가방 등 소지품에서도 박씨가 입었던 의류와 유사 섬유가 다시 발견됐다.

박씨와 이씨가 상호접촉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특히 이씨의 무스탕 동물털과 택시 내 동물 털은 전자현미경으로도 독특한 구조가 상호 일치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피고인 진술로 구성한 진술은 없다. 미세섬유와 관련 법의학(동물 실험으로 이씨 사망 시점 확인), CCTV영상 등 과학기술로 도출한 사실관계다. 모든 수사력에 집중했지만, 한편으로는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모든 가정을 세워 수사를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가 택시에서 이동하다가 휴대폰이 강제 종료된 시점 이전에 사망했고, 신체 부위 및 소지품에서 미세섬유가 군집을 이뤄 검출됐다. 이동 동선에 소나타 택시가 나오는 것은 절대로 우연일 수 없다.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실체적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검찰의 증거물 재검증 결과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이 가려진다. 

검찰이 증거를 통해 공소사실을 입증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피고인인 박씨 역시 자신이 한 범행이 아니라는 합리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상황을 항소심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할지도 주목된다.  

박씨는 1심 최후진술에서 “6개월 동안 수감생활하면서 이전 기억을 조금이나마 찾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한 본인이 원망스럽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만약 항소심 재판부가 검찰의 항소를 기각할 경우 대법원에 상고하더라도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이라 추가로 제기된 사실 관계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무죄가 확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검찰의 손을 들어줄 경우 원심과 판단을 달리했기 때문에 대법원 판단에 맡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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